5월 아름다운 마무리-김광현(가명)

중앙사무국

2018-06-01

세상에 홀로 된 아픔을 대물림 하긴 싫었어요.

뉴스를 통해서 천륜을 어기고 부모의 폭행 등의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사람의 정이 메마르고 물질적 가치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각박한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몸으로 홀로 꿋꿋하게 자녀를 길러온 아버지가 있어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인 김광현(가명)씨는 자신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물어볼 수 있는 부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서울 은평구에 있는 고아원에서 자랐기에 그 지역 인근에서 출생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할 뿐입니다. 고아원의 생활이 어땠는지를 묻는 질문에 배고픔이란 단어로 당시의 어려움을 일축해서 표현했습니다. 고아도 많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고아원의 생활은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고아원마저도 19살의 나이에 퇴소해야 했습니다.

 

고아원에서 퇴소 후 신림동 인근에서 구두닦이 등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기술이 있으면 잘 살 수 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금형공장에 취업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이 밥그릇을 빼기는 행위라고 여겨지던 풍토가 강했기에 푼돈을 주고 단순 노동을 시킬 뿐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공장에 생산 주문량이 늘어났고 아직 기술이 숙련되지 못했지만 기계를 다루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과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업무를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기술력 부족과 누적된 피로로 기계에 왼손이 들어가 으스러지는 사고를 겪게 되었고 20살의 어린 나이에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살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왼손을 잃었지만 상실감에 빠져 있을 수 없었습니다. 상실감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하고 사고로 받은 보상금으로 비디오 대여점을 열었습니다. 성실하고 친절한 성격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사업은 기대 이상으로 잘 되었습니다. 사업이 잘되면서 34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사업이 발달되고 컴퓨터 등이 보급되면서 비디오 대여점은 하나, 둘 사라지게 되었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에 아내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였고 홀로 아이를 키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광현씨는 어린 아이와 함께 비디오 대여점에서 생활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상황은 악화되었고 끝내 비디오 대여점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낮에는 고철을 줍고 밤에는 벼룩시장에서 물품을 파는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빚만 늘어나고 결국엔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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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힘겹게 홀로 버텨온 김광현씨에게 희망을..

기초생활 수급권자인 대상자는 약 50만원의 수급비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비록 아들이 대학교 3학년으로 매학기 장학금을 받고 있으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비를 벌고 있지만 장학금도 학비의 70~80% 밖에 되지 않고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여 소득이 작아 아버지를 보살필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생계비 부족으로 생긴 빚(1,200만원)이 있어서 원금과 이자를 갚고 각종 공과금에 수급비를 사용하고 나면 생계를 유지를 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홀로 힘들게 버텨온 김광현씨가 끝까지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1년간 월 20만원(식비와 의류비) 생계비를 지원하고자 하오니 많은 분들의 동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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