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모음
<일상의 심화(深化>
사람이 혼자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자유롭겠습니까?
저 구르는 낙엽처럼.

부자유하다는 것은 무엇에 얽혀 있다는 말이고,
어디에 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자기 밖의 타인이나 사물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은 이러한 관계의 지속입니다.
따라서 잘 산다는 말은
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지극히 범속(凡俗)해지기 쉽습니다
허구헌 날 비슷비슷하게 되풀이 되는 생활 속에서
자기의 빛깔은 바래가고 있습니다.
범속한 일상생활에 대한 자각은
자기 자신의 뿌리를 살피는 일입니다.
일상성 밖에 우리 생활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상성에 긍정적인 의미가 주어지려면
심화(深化)가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심화는 곧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매듭입니다.
그 매듭은 가지치기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스스로 마련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범속한 일상을 밑바닥까지 자각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눈이 뜨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보이지 않던 사물이 보이게 됩니다.
바깥 소음에 가려 들을 수 없던
내심(內心)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내 할 일을 알게 됩니다.
그 누구의 강요가 아닌,
내가 찾아서 내가 수행하려는 ‘내 일‘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용기와 넘치는 힘를 줍니다.
사람은 결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산다고 하는 것은
순간순간 자기의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의 종말이 명백하다 하여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능금나무를 심는다.”
이 말은 자기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생명의 소리입니다.
어디선가 길상사를 무주상 보시하신
길상화보살님의 음성이 들리는듯 합니다.
”천여평의 큰 대원각을 시주하시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
”그(백석시인)의 시 한 줄만도 못하지…“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이런 원초적 물음 앞에 마주 설 때 비로서 인간은
고독을 느낍니다.
고독은 절망과 동질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절망은 결코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 없습니다.
이 때에 비로소 자기의 분수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결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