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영상

공지사항더보기

제2기 대학 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 진행하였습니다.
06-01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5월 30일(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에서 2021년도 맑고 향기롭게 대학 장학생 -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습니다. 본회 대학 장학금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학업 성적이 우수한불자 대학생을 발굴하여 학업을 장려하고, 학업에 필요한 보조금을지원하기 위한 장학 사업으로4월 27일 1차 서류 심사와 5월 9일 2차 면담 평가를 거쳐 최종 16명을 선발하여 1년간 학업 장려금 300만 원을 지원하게 됩니다. 봄의 끝이라 해야할지, 여름의 시작이라 해야할지... 최근들어 비가 잦지만, 증서 수여식날에는 날씨가 쾌청하고, 꽃과 나무의 푸르름과 향기와 더불어 장학생들의 환한 미소와 긍정 그리고 젊음이 느껴지는 날이였으며,장학증서 수여식은 내빈소개 - 법정스님 영상 상영 - 맑고 향기롭게 단체 소개 - 장학사업 경과보고 -장학생 인사 - 장학생 다짐 서약 -이사장 스님 축하말씀 -장학증서 수여 -장학생 조별(마음,세상,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미션 토론, 발표 -단체사진 촬영으로 진행되었습니다.법정스님과 맑고 향기롭게를 장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안내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장학생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알리는 시간(퍼스널 브랜딩 발표)을 통해 서먹하던 장학생간에 조금씩 친밀감을 가지고 누구누구가 장학생이 되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또한, 장학생으로서 사회공헌 활동과 학업 이행, 품위 유지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며,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이바지 하겠다는 다짐으로 다함께 서약하였으며, 장학생들의 서약 후에 이사장 덕조 스님의 축하말씀으로 “공정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우수 불자 학생들이란 자긍심을 가지고 학업에 정진하길 바란다.”라고 응원하며, “앞으로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드는 세상의 인재로 성장해나가기를 기대한다.”며 따뜻하게 축하해주었습니다.그리고 장학증서를 수여하면서 108보리수 염주와 신간 <진리와 자유의 길>을 선물로 증정하였고, 특히 직접 장학생들에게 보리수 단주를 손목에 직접 채워주기도 하였습니다.장학증서 수여 후에는 장학생들이 ‘마음’ ‘세상’ ‘자연’ 각 3조로 나뉘어 자신들이 생각하는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하는 활동이 어떤 것이 있을지 공유하며, 장학생으로서 함께 한 해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사무국에서는코로나19로 일상적인 캠퍼스 생활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활기를 갖고 함께 소통할 수 있도록,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장학생들과 함께 하는 수련회나 문화 프로그램 등 을 통한 교류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계획하고자 합니다.그리하여 맑고 향기롭게 대학 장학생들이사회적경험이 향상되고, 나아가 미래의꿈과 희망이 이루어지길 기원드립니다.아울러 맑고 향기롭게 회원님들의 따뜻한 응원과 관심도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언론 보도  [뉴스렙] 대학생 16명에 1년 간 각 300만 원 장학금 지급[법보신문] 대학생 16명 ‘맑고향기롭게 장학생’ 선정[불교신문]맑고향기롭게, 2021년 대학 장학생 장학증서 수여식[불교저널] 맑고향기롭게 5월 30일 길상사에서 장학증서 수여식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께서 1994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발족하면서부터 어려운 여건에서도 꿋꿋하게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들을 발굴하여 장학금을 전해주었던 장학 사업을 28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며, 2021년 장학생까지 포함하여 중, 고등학생 717명, 대학생 64명의 학생들에게 총 11억 6천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게 되었습니다.●장학금 후원 동참 계좌:KEB하나은행?220-890015-10204/맑고 향기롭게 
불기2565년 부처님 오신날 행사 안내
05-17
제2기 맑고향기롭게 대학생 장학생 선정결과 발표 및 장학증서 수여식 안내
05-12
법정 스님 새 책 “진리와 자유의 길 ” 출간
05-11
대학 장학생 1차 서류 심사 합격자 명단 및 2차 면접 심사 일정 안내
04-28

일기일회

중앙모임 이달의 일정더보기

지역모임 새소식

중앙모임 활동소식더보기

복짓는삶을살자 (법정스님 6주기 추모법회)
[백성호의 현문우답] 맏상좌 덕조 "법정 스님이 가장 싫어한 칭호가 작가였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맏상좌 덕조 "법정 스님이 가장 싫어한 칭호가 작가였다"백성호 입력 2021. 05. 19. 05:00 수정 2021. 05. 19. 11:09 댓글 2개번역 설정공유글씨크기 조절하기인쇄하기 새창열림“법정 스님께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칭호가 ‘작가’였다.”1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덕조 스님을 만났다. 그는 법정 스님의 맏상좌다. 절집의 맏아들이다. 최근 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원고지 원고를 찾아내 『진리와 자유의 길』을 35년 만에 출간했다. 법정 스님 열반 후에 온갖 짜깁기 책들이 쏟아졌다. 정작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책은 2008년 『아름다운 마무리』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서울에 잠시 올라온 덕조 스님에게 ‘절집 아들이 보는 아버지, 법정 스님’을 물었다.덕조 스님이 불일암 서재를 정리하다가 찾은 법정 스님의 자필 원고 뭉치를 꺼냈다.Q : 법정 스님은 “책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했다. 책을 출간한 이유는.A : “성철 스님께서 『선문정로』와 『본지풍광』이란 책 원고를 시봉하던 원택 스님을 통해 법정 스님께 보낸 적이 있다. 당시 성철 스님은 ‘글은 법정 스님이 제일 잘 본다’고 말했다. 불일암을 찾은 원택 스님에게 법정 스님은 ‘이건 법공양을 하지 말고, 정식 출판을 하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 말을 듣고 성철 스님께서 화를 내셨다고 한다.”Q : 왜 화를 내셨나.A : “‘나보고 책 팔아 먹으라고 그러느냐!’고 소리를 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법정 스님이 책을 출간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Q : 그게 뭔가.A : “하나는 법공양을 해서 무료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1000명, 혹은 2000명밖에 못 본다는 거다. 그것도 주위에 인연 있는 사람들만 본다.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은 못 본다. 또 하나는 시중에 유통이 안 되면 책이 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가(有價)로 출판을 해야만 서점에도 남고, 도서관에도 남는다고 했다. 그래야 성철 스님의 법문이 두고두고 남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법정 스님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를 통해 "마음을, 세상을,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운동을 펼쳤다. 지금도 '맑고 향기롭게'는 그 유지를 잇고 있다. [중앙포토]법정 스님의 두 가지 이유를 들은 성철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래, 법정 스님한테 한번 속아보자.” 결국 성철 스님의 책은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됐다. 원택 스님은 20년 넘게 성철 스님을 시봉했다. 덕조 스님도 법정 스님의 맏상좌다. 이번에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저서를 출간하면서 덕조 스님은 적잖이 망설였다. 스승의 유언 때문이었다. 결국 원택 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다.Q : 왜 전화를 걸었나.A : “큰스님을 오랫동안 모시면서 원택 스님은 많은 경험을 하셨다. 자문을 구했다. 은사(법정) 스님은 책을 내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런데도 스님과 관계된 짜깁기식 책들이 마구 쏟아졌다. 정작 법정 스님이 직접 쓰신 책은 출간이 안 되는데 말이다.”Q : 어떤 결론을 얻었나.A : “결국 욕 먹는 건 나 하나로 끝나지만, 은사(법정) 스님의 책은 기록물로 남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그걸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래서 출간을 결심했다.” 덕조 스님이 법정 스님이 직접 쓴 원고지를 보여주고 있다. 1986년 당시 송광사 수련교재로 쓰인 글이다.Q : 바깥에서는 제자들이 출판 인세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일부 있다.A : “그건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된다. 모든 출판 수익은 법정 스님이 세우신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마음공부를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운동을 하는데 모두 쓰인다. 사적인 전용이 불가능한 구조다. 상좌들은 은사 스님 책의 출판 수익을 바라는 의사가 눈곱만큼도 없다. 당연히 가져서도 안 된다.”Q : 법정 스님은 왜 책을 다 없애라고 했나.A : “평소에도 ‘말 빚을 지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정리정돈하는 성품이셨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도 외출을 할 때는 서랍에 유언장을 남기고 다니셨다고 한다. 은사 스님도 외출할 때는 방안의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우고 가셨다. 그런 정신이 있으셨다. 수행자의 뒷모습을 남기지 않겠다는 정신 말이다. 그런 게 책을 절판시킨 이유이지 않겠나.”최근 출간된 법정 스님의 저서는 『진리와 자유의 길』이다. 원고 작성 3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원래는 1986년 법정 스님이 송광사 수련원장을 맡을 때 직접 쓴 수련교재였다. 그게 자필 원고와 낡은 비매품 책자로 불일암 서재의 먼지 속에 꽂혀 있었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은 채 말이다. 덕조 스님이 자료 정리를 하다가 뒤늦게 찾아냈다.1986년부터 송광사 수련교재로 사용됐던 법정 스님의 글이다. 비매품으로 제작돼 지금은 송광사에도 남아 있는 책이 없다.인터뷰를 하던 덕조 스님은 탁자 위에 해당 원고와 비매용 책자를 꺼냈다. 낡은 표지에 ‘1987년 여름 수련교재’라고 적혀 있었다. 표지 아래에는 ‘송광사 수련원’이란 글귀가 선명했다. 법정 스님은 1980년부터 91년까지 11년간 송광사 수련원장을 지냈다. 1986년에 처음 쓴 원고를 매년 보완 수정하면서 수련교재로 썼다. 법정 스님의 자필 원고에는 빨강ㆍ파랑 펜으로 써놓은 메모가 곳곳에 있었다. 이 원고를 본 송광사 어른 스님들은 “아, 이거 송광사 박물관에 보관해야겠다”고 했다. 덕조 스님의 생각은 달랐다.법정 스님이 해인사에 살던 시절이었다. 해인사는 장경각에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법보(法寶) 종찰이다. 어느날 장경각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한 할머니에게 법정 스님이 인사를 했다. “팔만대장경 보셨습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다.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노? 아, 그 빨래판!” 그 말을 듣고 법정 스님은 절감한 바가 있었다.Q : ‘빨래판’ 소리에 무엇을 절감했나.A : “팔만대장경을 우리는 엄청난 국보로 여기지만, 그걸 모르시는 분한테는 빨래판에 불과하다. 은사 스님은 ‘부처님 경전이 누구한테는 보배일지 모르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돌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때 불교 경전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번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셨다. 이 원고도 마찬가지다.” 인터뷰를 하다가 덕조 스님이 은사인 법정 스님이 이야기를 하다가 말문을 잃고 먹먹해하고 있다.Q : 무엇이 마찬가지인가.A : “박물관에만 보관되면, 이 원고는 빨래판에 불과하지 않겠나.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은 원고라 해도, 그냥 박물관의 전시품으로 끝나지 않겠나. 생전에 은사 스님은 ‘작가’라는 칭호를 가장 듣기 싫어하셨다.”Q : 법정 스님은 세상이 인정하는 작가다. 왜 그 칭호를 싫어했나.A : “당신의 정체성은 작가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했다. 나는 수행하는 사람이지, 글 쓰는 작가가 아니라고 했다. 법정 스님은 좋은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불교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하셨다. 그게 글을 쓰는 이유였다. 사실 1980년대에는 대중을 위한 불교 서적이 거의 없었다. 그 당시에 이런 책을 쓰신 거다. 그러니 이 책이 얼마나 값진가. 박물관에만 있기에는 너무 아쉽다고 생각했다.”법정 스님은 2010년에 열반했다. 순식간에 1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열반 당시만 해도 ‘무소유’하면 ‘법정 스님’이었다. 스님의 수필집을 자양분 삼아 젊은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 많았다. 그들이 법정 스님의 다비식에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2010년 송광사 근처 숲에서 열렸던 법정 스님의 다비식. 숱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법정 스님의 열반을 애도했다. [중앙포토]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덕조 스님은 “불일암에 있으면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종종 찾아온다. 그런데 선생님은 법정 스님을 아는데, 학생들은 법정 스님을 모르더라. 스님의 책이 절판된 지난 10년이 가져온 단절감을 그때 느꼈다”고 말했다. 또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서는 생활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을 선발해 1년에 300만 원씩 장학금을 주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장학생으로 선발된 30명 가운데 법정 스님을 아는 학생은 5명에 불과했다. 덕조 스님은 “10년이란 단절감을 그때도 크게 절감했다”고 했다.생전에 법정 스님은 엄한 성격이었다. 특히 남들보다 자신에게 무척 엄격했다. 많은 행자가 법정 스님의 상좌가 되고자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 법정 스님에게는 세 가지 철칙이 있었다. 첫째 주지 안하는 것, 둘째 상좌를 두지 않는 것, 셋째 유교식으로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두루마기를 입지 않는 것. 평소 “출가 수행자는 단출하게 입어야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그런 철칙을 깨고 처음으로 받은 상좌가 덕조 스님이었다. 행자 시절, 송광사와 불일암을 뛰어다니며 우편물 배달과 심부름하던 그를 법정 스님이 좋게 본 것이다. 법정 스님이 해인사에 살던 젊은 시절 얻은 별명이 ‘억새풀’이었다. 억새풀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살이 베인다. 수행하며 시퍼렇게 사는 법정 스님에게 도반들이 붙인 별명이다.덕조 스님이 행자 생활이 끝날 무렵 법정 스님이 '덕조'란 법명을 지어주며 상좌로 받아들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행자 생활이 끝날 무렵, 법정 스님은 그에게 법명을 지어주며 상좌로 받아들였다. 법정 스님은 “네가 보다시피 나는 까탈스럽고, 항상 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덕 있는 노스님을 모시며 살고 싶었다. 그러니 내가 덕 있는 할아버지를 대한다는 마음으로, 네 이름을 ‘덕조(德祖)’라고 지었다”고 했다. 뜻밖의 승낙에 기뻤던 덕조 스님은 송광사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만큼 법정의 상좌 수락은 당시에 파격이었다.덕조 스님은 “법정 스님의 깔끔한 성품이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불교의 요체가 깔끔하게 담겨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의 목소리가 많은 사람에게 닿았으면 했다. 35년 만에 살아난 법정 스님의 책 『진리와 자유의 길』 뒤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라.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을 확인하길 바란다.부처는 대자유인이다.부처는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이 부처답게 사는 것이다.”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법정 스님이 건네는 소낙비다.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법비 한 줄기다.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덕조 스님이 법정 스님의 사진 앞에 서 있다. 손에는 법정 스님의 육필 원고를 들고 있다.글=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05-19
‘향기소리’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봉사활동 진행했습니다.
05-10
따뜻한 겨울나기 성북구청 표창장 수상하였습니다.
05-06
향기우체부 OT를 진행하였습니다
04-19
‘나눔 공양 즉석밥’ 판매에 대한 의미
04-15

포토갤러리더보기

  • 사무국 전화 문의

    02-741-4696

  • 이메일 문의

    clean9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