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때로 높은 봉우리에, 때로 깊은 바다 밑에>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6월.
길상사에 들어서니 하안거 기도, 생전예수재, 금강경 기도 등
빗소리에 묻혀 들려오는 독경소리에
비에 젖은 푸르른 나뭇가지 조차 반짝반짝 생기가 도는듯
온통 기운이 맑습니다.
당나라 때 대매 법상(大梅 法常)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신라시대 때 스님들이 당나라로 이분을 찾아가서 제자가 된 경우도 있고
한국 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즉심즉불(卽心卽佛)’
’마음이 곧 부처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은
오늘 처음 듣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부처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곧 부처임을 확신한다면
더 묻고 배울 것이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잘 살피고 쓸 줄 알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길상사에는 성지순례도 많이 오시고 또
종교와 상관없이 템플라이프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오십니다.
며칠전에는 저 멀리 울산에서
70여분의 불자님들이 길상사를 찾아오셨습니다.
템플라이프 체험을 하시기 위해 그 많은 분들이
설법전으로 들어 오시는 모습은 너무도 맑고 향기로웠습니다.
누구 할 것 없이 돌아서서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조용히 들어오시는 보살님들의 얼굴은
참 보살의 모습이셨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그 분들과 어우러져
더욱 청정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나무든, 꽃이든
우리에게 지혜와 자비심을 일깨워준 그런 존재가 곧
내 스승이자 선지식입니다.
그 날의 보살님들은 곧 스승이자 선지식이셨습니다.
확고한 믿음은 내적 체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내적인 자기 체험을 거처야만
공덕의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게 믿고 행할 때 비로서 안팎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來莫可拒 往莫可追)’
당나라 법상스님의 말씀입니다.
열매는 제대로 익어야 열매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이 말씀이
누군가는 부처님 말씀인 줄 알았다 하고,
누군가는 법정스님 말씀인 줄 알았다 하며
한바탕 웃었습니다.
법정스님 책 속에서 읽었으니 당연히 법정스님 말씀인줄 알았다고… ㅎ
세월이 모든 것을 만들어 갑니다.
흐름을 따르는 것도 범속(凡俗)하겠지만,
때로는 있는 그대로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가볍게 극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항상 어디서나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살피고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상황을 거부하지 말고 순순히 받아 들이면,
거기에 삶의 묘미가 있습니다.
때로는 높은 봉우리처럼
때로는 깊은 바닷속 처럼…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살다가 때로는 앞이 막히는 때가 있습니다.
밤잠을 못 자고 생명을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뇌할 때는
남들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너무 자기식대로만 살려고 하니까,
자신의 자로만 넓은 세상을 재려고 하니까
무리가 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