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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25-11-21

    법정스님 책읽기 모임 11월 18일 후기

본문

영혼의 모음


<마른 바람 소리> 나그네 길에서.


곱게 물들었던 단풍들이 며칠사이에

마른 낙엽이 되어 거리를 덮고 있습니다.

지나는 자동차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들을 보니

마치 훌훌 털고 떠나는 나그네 같습니다.

어디로 갈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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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헌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나

훨훨 떨치고 나그네 길에 오르면

어렴풋이나마 인생이 무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이끌고 

아득한 지평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내 자신을 

이만치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해 가을 여행 중

법정스님께서 참으로 가보고 싶었지만 

차마 가 볼수 없었던 곳이 있었습니다.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구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배웠고,

또한 빈틈없는 정진으로 선열(禪說)을 느끼던 그런 도량이라

두고두고 아끼고 싶었던 곳.

지리산에 있는 쌍계사 탑전(塔殿).

그곳은 은사인 효봉선사를 모시고

단둘이서 안거를 하며 일상생활을 통해 입은 감화가 

거의 절대적이었던 시절이셨습니다.

그 당시 스님의 소임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찬을 만들고,

그리고 정진 시간이 되면 착실히 좌선을 하며 지내셨습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마을에 내려가 탁발을 해 오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50리 밖에 있는 구례장을 보아오셨습니다.

책을 좋아하시던 스님의 

최초의 분서(焚書)가 되었던 호손의 <주홍글씨>.

찬거리를 마련하려 마을에 내려갔다가 공양 시간을 십분 넘겨 

시간 관념이 철저하신 노사(老師)를 굶게 한 가책 등.

지금의 스님을 있게한 잊을 수 없는 

자기 형성의 도량이었던 곳

그런 곳의 변화된 모습을

차마 마주할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나그네 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됩니다.

지금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지내고 있는지,

내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행은 단순한 취미라 할 수만은 없습니다.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할

그 연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

11월의 거리를 뒹구는 마른 낙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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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지난 가을 

동으로 서로, 그리고 남으로 

발길이 닿는 대로 구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입산 이후 도정(道程)의 자취를 되새겨 보았다.

그 때 마다 지나간 날의 기억들이

저녁 물바람처럼 배어들었다.

더러는 즐겁게 혹은 부끄럽게

자신을 객관화 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