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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25-11-17

    법정스님 책읽기 모임 11월 11일 후기

본문

영혼의 모음


<무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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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상사에는 스타트업 회사, 일반 기업, 단체에서

길상사의 유래와 법정스님의 삶을 되새겨 보고자 하는 

템플라이프 방문 예약이 많습니다.

최상의 발전과 고도의 기술로 편해진 세상.

그러나 사람들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때문에

한 사람의 생(生),

법정스님의 삶을 기웃거립니다.


무소유.

우리들은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법정스님께서는 난초 두 분(盆)을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기르셨답니다.

그 애들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해다 읽으셨고,

여름철이면 서늘한 그늘로,

겨울에는 추위에 떨면서도 그들을 위해

온도를 높이지 않으셨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마가 개이고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자

뜰에 내놓은 난초가 뜨거운 햇볕에 늘어져 있을 것을 염려하여

서둘러 돌아오게 되셨습니다.

그 때 온 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셨답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 후 난초처럼 말없는 친구가 놀러왔을 때

선뜻 그의 품에 난초를 안겨주고

비로서 얽매임에서 벗어나

날듯한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스님은 하루 한가지씩 버리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십니다.

난초를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게 됐다고…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 돌 볼 새 없이 들뜨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소유냐 삶이냐’

20세기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지나친 광고와 소비의 홍수 속에서 

소유의 사회적 양식보다는 존재적 실존 양식이 

소외되지 않는 충만한 삶의 가능성이 있음을 말합니다.

소유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존재에 의해서 규정된 인간이 참 자아에 이르게 되며

근본적으로 다른 내면의 능동성을 전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또다른 의미입니다.

‘텅빈 충만’

‘진공묘유(眞空妙有)‘


일년을 애지중지 키워 

어여쁘게 채색한 아름다운 나뭇잎을

그저 지나는 바람에도 어낌없이 내어주는

저 묵묵한 느티나무가

무소유의 텅빈 충만을,

진공묘유의 오묘함을,

말없는 가운데 말합니다.


11월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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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어름한 요포(料布)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K. 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